
자화상 · 1840~41년경
MILLET
장프랑수아 밀레
Jean-François Millet
농민을 신화 속 인물만큼 크게 그렸다. 당시엔 그것이 정치적 도발로 읽혔다.
- 생몰
- 1814–1875
- 국적
- 프랑스
- 시대
- 19세기
- 경향
- 바르비종파
- 수록
- 작품 1점 · 인터뷰 1편
약력
노르망디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배웠지만 1849년 콜레라를 피해 바르비종으로 옮긴 뒤 죽을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이삭 줍는 여인들》이 1857년 살롱에 걸렸을 때 보수 언론은 불편해했다. 이삭줍기는 추수가 끝난 밭에서 남은 것을 줍는, 빈민에게 허락된 최하층의 노동이었다. 그런 장면을 역사화의 크기와 구성으로 그린 것 자체가 주장으로 읽혔다.
정작 밀레 본인은 정치적 의도를 부인했다. 그가 말한 것은 언제나 노동의 무게와 흙의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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