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AM A PEASANT
나는 농민입니다, 그 이상도 아닙니다
《이삭 줍는 여인들》이 살롱에서 욕을 먹은 이듬해
평론가들은 그 세 여자에게서 폭동의 냄새를 맡았다고 썼다. 화가는 그저 자기가 자란 마을을 그렸다고 했다.
— 작년 살롱 이야기부터 여쭙겠습니다.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화를 냈다고 들었습니다.
화를 냈다기보다 겁을 먹은 것 같았습니다.
어떤 분은 "이 여자들 뒤에 창을 든 무리가 서 있는 것 같다"고 썼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화면에는 여자 셋과 밀단과 하늘밖에 없습니다. 창은 그 사람 머릿속에 있었던 겁니다.
— 정치적인 뜻을 담으신 건 아닙니까.
나는 정치를 모릅니다. 파리에서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도 잘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겁니다. 추수가 끝나면 밭에 남는 것이 있고, 그걸 줍는 것이 오래전부터 허락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에도 나오는 일입니다. 해가 지기 전 정해진 시간에만 줍고, 시간이 지나면 나와야 합니다. 그림 저 뒤에 말 탄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시간을 보는 사람입니다.
허리를 굽히는 일이 왜 위험한 이야기가 되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 세 사람의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보일 필요가 없어서입니다.
허리를 굽힌 사람은 얼굴이 아래로 갑니다. 그게 그 자세입니다. 얼굴을 보이게 하려면 고개를 들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줍는 사람이 아니라 줍다 말고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이 됩니다. 그건 다른 그림입니다.
등과 손과 무릎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보입니다. 나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배웠다기보다, 그 등을 보고 자랐습니다.
“나는 농민으로 태어났고 농민으로 죽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말할 뿐이고, 내가 아는 것은 땅에 있다.”
— 파리에서 그리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화상들은 파리에 있습니다.
한동안 있었습니다. 초상을 그려 주고 살았습니다. 못 살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파리에서는 저녁이 오지 않습니다. 오기는 오는데, 저녁이 온다는 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종이 울리면 밭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멈춥니다. 그 몇 초를 나는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림값은 여기가 훨씬 못합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 농민들은 선생의 그림을 봅니까.
보지 않습니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한 번은 이웃이 화실에 들어와 캔버스를 한참 보더니 그러더군요. "그 여자, 그렇게 오래 굽히고 있으면 허리가 나갈 텐데."
그날 밤에 그 말을 오래 생각했습니다. 파리의 어떤 비평보다 정확한 말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