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8월 2주차 인터뷰 발행
정선, 《인왕제색도》
26년 5월 3주차 · NO. 01 · 죽은 화가와의 대화

AFTER THE RAIN

사흘 동안 비가 왔습니다

《인왕제색도》를 막 끝낸 일흔여섯의 화가에게

정선한양 인왕산 아래 · 1751년 윤5월정한슬5월 18일 (월) 발행2조회 0

중국 화보를 베끼던 조선의 산수를 실제 땅 위로 끌어내린 사람. 그가 마지막에 그린 것은 늘 보던 창밖의 산이었다.

사흘 내리 비가 왔다고 들었습니다.

윤달 하순입니다. 장마가 일찍 들었습니다.

비가 그친 게 어제 늦은 아침입니다. 안개가 산허리에 걸려 있고 바위는 아직 물을 먹어 새까맣습니다. 그 색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반나절이면 마르지요. 그래서 서둘렀습니다.

평생 보신 산입니다. 굳이 지금 그리신 이유가 있습니까.

늘 보는 산을 늘 그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인왕산은 화강암 덩어리입니다. 맑은 날에는 희고 밋밋해서 그릴 게 없습니다. 그런데 비를 맞으면 검어지면서 뼈가 드러납니다. 그 며칠이 이 산의 얼굴입니다.

일흔여섯이니 이런 날이 몇 번 더 오겠습니까.

바위를 선으로 그리지 않으셨습니다.

붓을 눕혀 쓸었습니다.

중국 화보를 보면 바위 결을 그리는 법이 여럿 있습니다. 도끼로 찍은 자국 같은 법, 삼 껍질을 풀어 놓은 것 같은 법. 다들 그걸 외웁니다.

그런데 그 법들은 중국 남쪽의 무른 산에서 나온 겁니다. 인왕산은 그런 산이 아닙니다. 통째로 하나의 돌덩이입니다. 결을 그리면 오히려 거짓이 됩니다. 그래서 면으로 밀었습니다.

배운 법을 버리는 데 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정선,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1751. 79.2 × 138.2 cm. 붓을 옆으로 뉘어 쓸어내린 쇄찰(刷擦)로 젖은 화강암의 무게를 냈다.

금강산을 여러 번 다녀오셨습니다. 조선의 산수화가 중국 화보를 베끼던 때에요.

벽에 걸린 산이 다 남의 나라 산이었습니다. 가 본 사람도 없는 산이지요.

서른여섯에 금강산에 처음 올랐습니다. 올라가 보니 화보에 없는 모양이더군요. 봉우리가 바늘처럼 서 있는데 그런 준법이 책에 없습니다. 없으면 만들어야지요.

다만 본 대로만 그린 것은 아닙니다. 산을 한 화면에 다 넣으려면 어딘가는 접고 어딘가는 늘려야 합니다. 나는 눈에 보인 것보다 그 산이 준 느낌 쪽을 택했습니다.

배운 법을 버리는 데 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화면 왼쪽 아래에 기와집이 한 채 있습니다.

….

그 집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산을 그리려면 사람이 사는 자리를 어딘가에는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산이 큽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며칠 뒤, 정선의 평생지기였던 시인 이병연이 세상을 떠났다. 화면 왼쪽 아래 기와집을 그의 집으로 보는 해석이 오래 있어 왔다. 정설은 아니다.

앞으로 무엇을 그리실 생각입니까.

창밖입니다.

먼 데 갈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밖에도 아직 못 그린 것이 남았습니다. 같은 산인데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비 온 날과 갠 날이 다릅니다. 팔십 년을 봤는데 아직 다 못 봤습니다.

정선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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