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8월 2주차 인터뷰 발행
김홍도, 《씨름》
26년 8월 1주차 · NO. 12 · 죽은 화가와의 대화

A LETTER ABOUT TUITION

월사금을 내지 못했습니다

어진을 그린 화원의, 예순한 살 겨울

김홍도한양 · 1805년 섣달정한슬8월 3일 (월) 발행3조회 1

임금의 얼굴을 세 번 그린 사람이었다. 그해 겨울 그가 쓴 편지에는 아들의 수업료 이야기가 적혀 있다.

방에는 화구가 없었다. 벼루 하나와 마르다 만 붓 두 자루가 문갑 위에 놓여 있었고, 그는 내내 손을 소매에 넣고 있었다.

올해가 예순하나이십니다. 요즘은 무엇을 그리십니까.

그리지 않습니다.

손이 떨려서가 아닙니다. 손은 아직 됩니다. 다만 그려 달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림이란 것이 이상해서, 부르는 사람이 없으면 그리고 싶은 마음도 같이 조용해집니다.

젊을 적에는 그리지 말라고 해도 그렸는데요.

임금의 얼굴을 세 번 그리셨습니다. 그런 일을 맡는 화원은 조선에 몇 되지 않습니다.

세 번입니다. 스물아홉에 한 번, 서른일곱에 한 번, 마흔일곱에 한 번.

어진을 그릴 때는 얼굴을 오래 봅니다. 신하 된 자가 임금의 얼굴을 그렇게 오래 보는 자리는 그때뿐입니다. 눈을 마주치지는 않습니다. 코와 입 사이, 그 언저리를 봅니다.

그 일로 벼슬을 받았습니다. 안기 찰방, 연풍 현감. 화원이 고을을 맡은 일은 드뭅니다. 그래서 말이 많았지요.

연풍에서는 왜 물러나셨습니까.

중매를 섰다, 기녀를 데리고 다녔다, 세금을 함부로 걷었다 — 그런 말들이 올라갔습니다.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나는 고을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림 그리는 자에게 고을을 맡긴 것은 임금의 뜻이었고, 그 뜻을 감당하지 못한 것은 내 몫입니다.

김홍도, 《씨름》
《씨름》, 18세기 말. 구경꾼의 시선이 모두 한가운데로 모이는데, 화면 오른쪽 아래 엿장수만 딴 데를 본다.

《씨름》에서 엿장수만 씨름을 보지 않습니다. 일부러 그러셨습니까.

장사꾼은 씨름을 보지 않습니다. 씨름 보는 사람을 봅니다. 언제 목이 마를지, 언제 손이 심심해질지를 보는 겁니다.

구경꾼을 스물두 명 넣었는데, 스물한 명이 같은 데를 보면 그림이 한쪽으로 쏠립니다. 하나가 다른 데를 봐야 나머지 스물하나가 어디를 보는지 눈에 들어옵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잣거리에 며칠 앉아 있으면 다 보입니다.

스승 강세황 선생은 선생을 두고 "우리나라 근래의 신필"이라 하셨습니다.

그 어른은 내가 일고여덟 살 때부터 나를 보셨습니다. 그런 사람의 칭찬은 칭찬이라기보다 기록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 어른이 한 말 중에 내가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은 다른 대목입니다. 옛 그림을 배우되 옛 그림에 갇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중국 그림을 베끼는 화원이 그때도 많았습니다. 나는 저잣거리를 그렸습니다. 그것이 배운 대로 한 것인지 어긴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가난하여 아침저녁 끼니를 잇기 어렵다. 연록의 수업료 두 냥을 보내지 못하니 마음이 몹시 아프구나.

지난달 아드님께 보내신 편지를 보았습니다.

… 그 편지를 보셨습니까.

임금의 얼굴을 그린 손으로 두 냥을 못 만듭니다. 이상한 일 같지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림값이란 것은 그림을 사는 사람이 있을 때만 값입니다. 나를 부르던 분이 가시고 나니 값도 같이 갔습니다.

아이에게는 그림을 가르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도 붓을 잡더군요. 말리지 못했습니다.

이 편지 이후 김홍도의 행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몰년은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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