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8월 2주차 인터뷰 발행
신윤복, 《단오풍정》
26년 7월 4주차 · NO. 11 · 죽은 화가와의 대화

BEHIND THE WALL

담 안쪽을 그렸다는 것

도화서 화원 신윤복에게 묻다

신윤복한양 · 연도 미상구윤아7월 27일 (월) 발행3조회 0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화가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것은 서른 폭의 화첩과, 그 안에서 조선이 좀처럼 보여 주지 않던 장면들이다.

이 문답은 특정한 날짜를 갖지 않는다. 그에 관한 기록이 그만큼 없기 때문이다.

아버님도 화원이셨습니다. 그림이 가업이었던 셈입니다.

먹고사는 일이었습니다. 도화서 화원은 벼슬이라 하기도 어렵고 아니라 하기도 어려운 자리입니다. 어진을 그리는 일이 있으면 상이 내리고, 없으면 지도를 베끼고 의궤의 그림을 칩니다.

아버지는 초상을 잘 그리셨습니다. 사람 얼굴에서 뼈를 먼저 보라고 하셨지요. 살은 나중이라고.

그런데 화원의 붓으로 기녀와 한량을 그리셨습니다. 관에서 요구한 그림이 아니지 않습니까.

관이 시킨 그림은 따로 그렸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성실히 했습니다.

다만 관이 시키는 그림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얼굴은 있는데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없습니다. 나는 그게 늘 답답했습니다.

한양 거리에 나가 보면 사람이 넘칩니다. 술 마시고, 다투고, 담 너머로 누구를 기다립니다. 그것을 아무도 그리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없는 일이 아니라 다들 아는 일인데요.

신윤복, 《월하정인》
《월하정인》. 화제에 적힌 시각은 삼경 — 통행금지가 있던 한양에서 남녀가 담 모퉁이에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월하정인》의 두 사람은 밤 열한 시가 넘어 담 모퉁이에 서 있습니다. 위험한 시각입니다.

위험하니까 거기 서 있는 것입니다. 낮에 만날 수 있는 사이라면 담 모퉁이에 설 이유가 없지요.

그림에 글을 한 줄 적어 두었습니다. "달빛 어스름한 삼경,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 나도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고요. 내가 하는 일은 그 두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는 사실까지입니다.

무엇을 그렸느냐고 자꾸 물으시는데, 나는 무엇을 그리지 않았는가를 더 오래 생각합니다.

《단오풍정》에는 바위 뒤에 훔쳐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굳이 그려 넣으신 이유가 있습니까.

그날 개울가에 그런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사람도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담 밖에서, 바위 뒤에서 들여다보고 있지요. 나는 그것을 화면 안에 한 번 그려 넣었을 뿐입니다. 보는 사람이 그 둘을 발견하면, 잠깐 멈칫하게 됩니다. 그 멈칫함이 이 그림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입니다.

신윤복, 《단오풍정》
《단오풍정》. 화면 왼쪽 위 바위 뒤에 소년 승려 둘이 숨어 있다.

도화서를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돕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습니다. 내가 나온 것인지 내보내진 것인지, 그것을 적어 둔 문서를 나도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관의 붓과 내 붓이 같은 것을 그릴 수 없다는 건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미인도》는 이름 없는 여인을 사람 키만 하게 그린 그림입니다. 조선에서 흔한 일이 아닙니다.

초상은 죽은 뒤에 제사를 지내려고 그립니다. 그러니 벼슬한 사내가 아니면 그릴 이유가 없지요.

나는 이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그렸습니다. 앉히지 않고 세웠고, 뒤에 아무것도 두지 않았습니다. 옷고름을 매만지는 손, 그것 하나 보시면 됩니다. 저 손이 이 그림의 전부입니다.

이름은 적지 않았습니다. 적을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혜원전신첩》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1930년 간송 전형필이 오사카에서 되사들여 돌아왔다. 현재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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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안쪽을 그렸다는 것 · 바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