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COLOUR I CANNOT TRUST
눈이 나빠지고서야 색을 의심했습니다
백내장 수술을 앞둔 여든두 살의 화가에게
오십 년 전 그는 항구의 아침을 그려 "인상"이라는 조롱을 얻었다. 이제 그는 자기 눈이 보내오는 색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정원 쪽 문은 열려 있었고, 물 냄새가 방까지 들어왔다. 그는 챙 넓은 모자를 실내에서도 벗지 않았다.
— 오십 년 가까이 된 이야기부터 여쭙겠습니다. 「인상」이라는 말은 원래 욕이었지요.
욕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잘 쓴 욕이었어요.
그 기사를 쓴 사람은 내 그림을 두고 벽지 견본만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정확히는, 초벌 상태의 벽지가 저것보다는 완성돼 있다고 썼지요. 나는 그 문장을 아직 외웁니다. 사람은 칭찬은 잊고 그런 건 안 잊습니다.
제목이 문제이긴 했습니다. 르아브르 항구를 그렸는데 목록에 뭐라고 적을지 물어서, 항구 풍경이라고 하기엔 항구가 안 보이니 「인상」이라고 적으라고 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오십 년을 갔습니다.

— 그 그림의 해는 유난히 붉습니다.
밝기는 하늘과 거의 같습니다. 색만 다릅니다.
눈은 밝기보다 색의 차이에 먼저 반응합니다. 그래서 그 해가 떠 보이는 겁니다. 밝게 칠해서 뜬 게 아니라 다르게 칠해서 뜬 것이지요.
그때는 이걸 말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보였습니다.
— 지금은 눈이 예전 같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십 년쯤 됐습니다.
처음에는 안개가 낀 줄 알았습니다. 아침마다 연못에 안개가 끼니까요. 그런데 안개가 걷힌 날에도 안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파랑이 잘 안 옵니다. 세상이 누렇고 붉습니다. 문제는 그게 틀린 색이라는 걸 내가 안다는 겁니다. 눈은 붉다고 하고 머리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 사이에서 붓을 들어야 합니다.
— 그래서 어떻게 하십니까.
물감 튜브에 적힌 이름을 봅니다.
오십 년 동안 색을 보고 골랐는데, 지금은 읽고 고릅니다. 이게 무슨 화가입니까. 그런데 다른 수가 없습니다.
지난겨울에 그린 것 몇 점을 봄에 다시 보고 태웠습니다. 붉기가 그림이 아니라 병으로 보였습니다. 태우는 건 오래 하던 일입니다. 젊어서도 태웠습니다. 다만 그때는 못 그려서 태웠고 지금은 못 봐서 태웁니다.
— 수술을 권한다고 들었습니다.
무섭습니다. 이 나이에 무섭다는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무섭습니다.
눈을 째서 더 나빠지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런데 이대로 두어도 끝입니다. 어느 쪽 끝을 고르느냐의 문제입니다.
큰 그림들을 나라에 주기로 약속해 두었습니다. 그 방이 완성되는 걸 보고 싶습니다. 그것 때문에 눈을 째기로 마음이 기울고 있습니다.
— 연못은 직접 만드셨지요.
땅을 사고 물길을 끌어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이상한 풀을 심어 강물을 버린다고요.
지금은 그 연못밖에 안 그립니다. 멀리 갈 힘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거기 다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하늘이 물에 비치니 하늘을 그리는 것이고, 구름이 지나가니 시간을 그리는 것이고, 수련이 피고 지니 여름을 그리는 겁니다.
한 자리를 오래 보면 세상이 다 들어옵니다. 이건 눈이 나빠지고 나서 확실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