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8월 2주차 인터뷰 발행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앞바다의 높은 파도 아래》
26년 6월 1주차 · NO. 03 · 죽은 화가와의 대화

STILL NOT THERE

아흔에도 아직 멀었습니다

이름을 서른 번 바꾼 노인에게

가쓰시카 호쿠사이에도 · 1849년 봄정한슬6월 1일 (월) 발행3조회 0

대표작을 일흔이 넘어 그렸다. 여든여덟이 된 지금도 그는 자기가 아직 화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름을 여러 번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

슌로, 소리, 다이토, 이이쓰, 가쿄로진 만지. 세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림이 바뀌면 이름도 바꿨습니다. 예전 이름으로 새 그림을 내놓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일이지요. 쓰던 이름은 제자에게 넘겼습니다. 팔기도 했고요.

지금 이름은 무엇입니까.

가쿄로진 만지. 그림에 미친 늙은이라는 뜻입니다.

농담으로 지은 게 아닙니다. 여섯 살부터 그렸는데, 일흔 전에 그린 것들은 지금 보면 볼 것이 없습니다. 일흔셋에 겨우 새와 짐승과 벌레의 뼈대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여든이면 더 나아질 테고, 아흔이면 그 속을 뚫을 것이고, 백이면 신묘한 데 이를 겁니다. 백열 살이 되면 점 하나 선 하나가 살아 있겠지요.

지금 여든여덟입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일흔 이전에 그린 것 중에는 헤아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후가쿠 36경》은 후지산을 서른여섯 각도에서 본다는 기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지산이 아주 작은 그림이 많습니다.

후지산은 어디서나 보입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에도의 목수도 보고, 어부도 보고, 여행객도 봅니다. 다들 자기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면 거기 있습니다. 그러니 후지산을 크게 그리면 오히려 거짓말이 됩니다. 사람들은 후지산을 보려고 사는 게 아니니까요.

서른여섯으로 끝내려 했는데 잘 팔려서 열 장을 더 냈습니다. 그래서 마흔여섯 장입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앞바다의 높은 파도 아래》
《가나가와 앞바다의 높은 파도 아래》. 배 세 척에 각각 여덟 명, 모두 스물넷의 뱃사람이 몸을 낮추고 있다.

그 파도 그림은 배 위의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보입니다. 세어 보시면 스물넷입니다.

그들은 에도로 생선을 나르는 배를 탑니다. 이 파도는 그들에게 구경거리가 아니라 일터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파도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다들 노를 붙잡고 몸을 낮추고 있지요.

파도만 그렸다면 그저 큰 물입니다. 저 스물넷이 있어야 파도가 큽니다.

그 파랑이 유난히 깊습니다.

네덜란드 배로 들어온 안료입니다. 베로린 아이라고들 부릅니다.

예전에 쓰던 쪽빛은 해를 보면 몇 해 못 갑니다. 이건 안 바랩니다. 값도 예전만큼 비싸지 않게 되었고요. 이 파랑이 없었으면 그 파도는 못 그렸습니다.

그림은 화가 혼자 그리는 게 아닙니다. 판목 새기는 사람, 찍는 사람, 안료 파는 사람이 다 있어야 한 장이 나옵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개풍쾌청》
《개풍쾌청》. 늦여름 이른 아침, 남풍이 불 때 후지산이 붉게 물드는 짧은 시간을 그렸다.

이사를 아흔 번 넘게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치우는 걸 못 합니다. 방이 그림과 종이로 차면 옮깁니다. 그게 다입니다.

딸 오이가 같이 삽니다. 그 아이도 그림을 그리는데, 인물의 손을 나보다 잘 그립니다. 그 말은 본인 앞에서는 안 했습니다.

호쿠사이는 이 대화 시점으로부터 몇 달 뒤인 1849년 5월에 죽었다. 여든여덟이었다. 마지막에 "하늘이 십 년만, 아니 오 년만 더 준다면 진짜 화가가 될 수 있을 텐데"라고 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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